Noh HaeYul | 키네틱 키드와의 대화
Noh Hae Yul Portfolio
노해율, noh hae yul, 작가, artist, art, 조각,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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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키드와의 대화

글|김노암(상상마당 전시감독)

 

1. 노해율의 경우

그의 작업실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직전에 좀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매사 깔끔한 계획과 설계, 안정적인 키네틱 메카니즘을 짐작해본다. 주제이자 키워드는 역시 운동이고 리듬이다. 또 단순히 미술사적 맥락에서 키네틱아트의 한 사례라고 평할 수도 있다. 작가는 조촐하게 그래픽 처리된 설계도 몇 장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곧 영상자료로 그가 만든 움직이는 장치들 또는 오브제들을 보여준다.

그는 운동과 정지, 회전과 왕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흥미를 갖게 되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운동 형태를 작업의 재료로 삼아 새롭게 조작하고 연출한다. 그것이 무형의 빛이나 사운드이건 또는 동역학과 정역학에 따른 기계적 장치건 간에 흔히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키네틱아트의 전형성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근래 움직이는 조각이라고도 불리는 키네틱아트에 관심이 점차 고양되고 있다. 노해율의 작업의 이해를 위해 국내 키네틱아트의 대표 주자 최우람의 작업과 비교해 보자. 최근 몇 년간 최우람의 활발한 활동과 국제적 인지도는 키네틱아트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의 조각분야에도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에게 일종의 격려이자 역할모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상당히 오랜 기간 실험과 준비기간을 보낸 후의 일이다. 작가 노해율의 작업, 특히 Swing시리즈는 그에 비해 아직은 덜 알려진 상태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모색과 집중력을 고려해보면 한국의 키네틱아트를 이해하는데 그를 빼놓을 수 없는 시기가 앞당겨질 것 같다. 아직까지는 보다 중요한 맥락과 장소, 그리고 시기에 작품을 연출해 좀 더 보여주어야 한다.

최우람의 작업이 보다 기계적 동력과 유사생명체라는 가상의 유기체나 생태계 또는 변종 전자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한다면 노해율의 작업은 보다 원형적인 운동-메카니즘과 키네틱의 현상에 집중한다. 최우람의 작업이 화려함과 교묘함을 지녔다면 노해율은 단순성과 투명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여러 해 많은 공간에서의 전시경험을 통해 최우람의 경우 작품을 연출하는 공간과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는데 반해 노해율은 간단히 작품이 놓이는 공간과의 유기적 관련성을 무시해버린다. 기계적 메카니즘을 적용하는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은 섬세한 성격과 정교한 집중력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점에서 노해율과 최우람은 유사하나 공간의 활용에 있어서는 확연히 기질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사실 의식적이기 보다는 무의식적이라고 보인다. 노해율의 오브제는 그것이 놓인 공간과 파열하며 마찰음을 낸다.

무엇보다 노해율의 운동-메카니즘은 현실에 더 가까이 붙어있다. 최우람의 경우 비현실적인 정체불명의 미래의 기계생명체를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더더욱 노해율의 작업은 오늘 우리의 일상의 한 구석 어디에선가 있음직한 운동의 현상을 뚝 떼어내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노해율의 운동하는 오브제는 상대적으로 리얼리스트의 분위기를 띤다. 그의 작업이 풍기는 쿨한 또는 냉냉한 분위기는 바로 현실에 보다 가깝게 접촉해 있기 때문이다. 노해율의 우아한 운동체는 아주 미세한 틈이나 결핍을 지닌다.

2. 운동의 ABC

현대미술에서 운동의 문제는 매우 특별하게 다뤄져 왔다. 어쩌면 미술사에서 운동성이 미술작품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 또한 20세기 현대에 들어서일 것이다. 물론 그 계기는 이미 그보다 오래전부터 철부지 귀족들과 모험가들이 광적으로 달려들었던 자동차와 비행기의 속도경쟁과도 관련될 것이다. 속도와 운동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 일반의 오래된 보편적 욕망이라면 어떤 고차원의 추상적 관념이 아닌 바로 운동을 둘러싼 물질성과 더 연관될 것이다. 그 물질성이란 아마도 우리의 기억이나 의식과 관련된 물질성일 것이다. 더 빠른, 더 정교한 속도와 운동은 더 절박한 의식과 기억의 연상 작용을 촉발한다. 빠른 속도와 관성과 운동과 마찰 사이에 잠깐씩 아주 느린 또는 정지된 이미지가 노출되는 것 같다. 그 아련한 뉘앙스를 생각해보면 노해율의 작업은 일종의 타임머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아, 그렇지!”

탄성과 함께 온갖 운동체가 벌이는 동력학이 눈앞을 가로지르며 평소 접하기 힘든 운동-메카니즘을 보여준다. 회전운동이 어느 순간 왕복운동으로 변신하고 규칙적인 운동이 불규칙성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이내 비척대며 규칙적인 운동으로 회귀한다. 마치 운동체들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작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대상과 주체가 사라지고 일정한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노해율은 이미 오래전 시작된 운동의 유기적이며 자생적인 생성을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해 확인하고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의 자각은 최근의 일이다. 노해율의 키네틱은 평균적인 미술사의 내러티브가 보여주는 균질한 무채색을 배경으로 밀어내면서 보편적인 공통의 기억의 광장을 가로질러 개인의 기억 또는 개별자의 특이성을 내보인다.

작가 스스로 국민학교 세대라고 말하듯 국민학교 세대가 갖는 기계적 운동장치의 로망과 현실의 만남의 한 지점에 자신을 고정시킨다. 그리하여 오래전 과학실험실에서 벌어졌을법한 풍경이 세대를 가로질러 우리 눈앞에 현신한다.

“이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운동이 탄생한 순간을 목격하는 것 같군! 말하자면 운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지.”

지상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채 좌우로 왕복운동을 매우 우아한 왈츠를 추듯 보여주는 작업이나 기하학적 도형들이 왈그닥거리며 회전운동을 반복한다. 생경한 환경과 부딪치며 갈등하는 운동체가 운동의 ABC를 중얼거린다. ■